​"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맡겨진 소녀> 슬픈소설 가족이란 영화 '말없는 소녀' 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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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치한 그녀가 B급 감성으로 읽어주는 책 책 책~/소설, 에세이 등등

<맡겨진 소녀> 슬픈소설 가족이란 영화 '말없는 소녀' 원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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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책은 얇다. 그래서 누구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100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이지만 여백이 넘치는 글이라서 활자 이면의 무언가를 자꾸만 응시하게 된다. 분량은 중편 소설에 가깝지만 작가 본인은 중편 소설의 호흡이 아니기 때문에 "긴 단편 소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데 나는 영화보다 소설을 먼저 만나보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 상상력의 한계를 불러올 것 같고 선입견으로 소설을 읽을 것 같아서 책과 영화 중 책을 먼저 읽어보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역시나~ 소설을 먼저 읽길 잘했다. '말없는 소녀' 스틸컷을 보니 내가 상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일단 소설을 통해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 후 영화를 만나보는 걸 추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다. 24년간 단 4권의 책만 냈으며 그 모든 작품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작품은 절제와 생략, 상징과 암시로 이루어졌기에 그야말로 단편소설로 최적이지 않을까 한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보다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풍부한 이면과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생각되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저자는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간 이래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아일랜드에서는 국민 소설로 손꼽힌다.



  얇은 단편소설인만큼 줄거리 역시 단순하다. 한 소녀가 먼 친척 부부에게 보내지면서 함께 보내는 여름 이야기이다. 책 표지에 <foster>이라고 원제가 써져 있어서 찾아봤더니 foster란 아이를 맡아 기르다[위탁 양육하다], 수양[위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먼 친척 부부에게 몇 달 동안 위탁된 한 아이의 시점으로 책의 내용이 전개되므로 어른의 입장에서는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이럴 때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새삼 느끼며 읽었던 책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81년 아일랜드 시골 마을이다. 소설에서 아빠는 먼 친척에게 아이를 맡기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오죽하면 아이의 짐을 내려놓는 것도 잊은 채 서둘러 가버렸을까. 아빠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고 떠났다.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


  사실 사촌처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정말로 먼 친척 부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주인공 아이의 부모와 아이를 잠시나마 맡아 양육해 줄 친척 부부 사이에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맡아준 친척 아주머니가 깊은 밤, 내가 잠든 줄 알고 침대로 와서 '나'를 보고 하는 아래의 말로도 정말 먼 친척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말이 좋아 친척이지 그냥 모르는 사람 집이라는 얘기~~





"불쌍하기도 하지." 아주머니가 속삭인다.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ㅡ이 책 34쪽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아동학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1980년대 가난한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과거에 우리나라도 대가족에서 막내가 새로 태어나면 아이 몇몇을 친척에게 맡기는 일이 관행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아이를 많이 낳고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던 국가에겐 참혹한 일상도 그저 당연한 일로 여겨질 뿐이다.


  게다가 나의 어머니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었으며, 아이들을 볼보고 집안 일과 밭일까지 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으니..... 아버지라도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무심하기 이를 데 없으니...... 여기에 더해 가난하기까지 한 환경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 어쩌면 아이가 없이 풍족한 먼 친척 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 건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와 달리 킨셀라 부부는 나를 애정으로 돌본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침대에 오줌을 싼 나를 혼내기는커녕, 방이 원래부터 습해서 매트리스가 젖었다고 말한다. 아저씨는 매일 내게 우편물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달리기 연습을 시키고 기록을 잰다. 아주머니는 나의 발가락이 길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고 예쁜 옷을 사주기도 한다.



  뉴스에서는 단식 투쟁 소식을 전하며 1981년의 혼란한 아일랜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나는 '네'라고 대답하는 법을 배우고, 책 읽는 법도 배우며 행복하고 평화로운 여름을 보낸다.



  동네 초상집에 갔다가 우연히 아이는 킨셀라 부부의 아픔을 알게 된다.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부부.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슬픔을 예기치 않게 들켜 버린 아저씨가 아이와 산책을 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ㅡ이 책 73쪽




  킨셀라 아저씨는 이웃에게 아이에 대해 말할 때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동생이 태어난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아이가 감기 증세를 보이자 엄마가 무슨 일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도 말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책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의 중요성이 아닐까 한다. 아니, 말의 중요성이 아니라 침묵의 중요성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힘껏 달려가 안기며 자신을 데리러 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 깊었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안긴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인지, 나를 찾아 다가오는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인지......


  어차피 좋은 소설이란 경계가 불분명한 열린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다양한 해석과 여지를 남겨두는 소설이어서 여운이 크게 남았다. 저자인 클레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고 이야기했으며,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나 같은 독자들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믿음에 힘입어 더 자세히, 더 천천히 글을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사력, 관찰력이 돋보이는 문체도 좋았고 어린 소녀 관점에서 혼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인공이 어느덧 킨델라 부부의 살뜰하고 애정 어린 보살핌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빨간 머리 앤>을 닮기도 한 <맡겨진 소녀>는 남녀노소 그 누구의 마음에라도 잔잔한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어여쁜 소설이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톺아볼 수 있는 이 책을 세상 모든 가족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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